모든 동물들에 있어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여 이로부터 재빨리 대피하거나 맞서 싸우도록 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위험 경보 장치」가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경우 뇌 속에 있는 자율신경계의 중추가 이 「위험 경보 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깊은 산 속에서 사나운 맹수와 맞닥뜨린, 혹은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이때 「위험 경보 장치」는 즉각적으로 경보 신호를 발동하고 그 결과 온 몸의 자율신경계(교감신경계)가 일시에 흥분상태에 들어간다. 따라서 심장이 급격히 뛰고, 호흡이 빨라지며, 근육들은 극도로 긴장하게 된다. 또한 식은 땀이 나고 동공은 확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은 위험 상황으로부터 즉시 도망치거나 혹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우리 신체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위험 상황이 종료되고나면 신체는 다시 정상상태로 되돌아 간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건 이 「위험 경보 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안한다면 우리는 위험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고, 결국 생명을 잃게 되는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렇듯 「위험 경보 장치」는 우리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위험 경보 장치」가 병적으로 예민해져서 실제로는 아무런 위험도 없는 데, 혹은 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경보가 울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것은 거짓 경보이다. 그러나 이 경보를 경험하는 당사자는 그것이 거짓 경보임을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잠을 자다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도중에, 그밖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급작스럽게 「위험 경보 장치」가 작동하고 그 결과 앞서 언급한 다양한 자율신경계 반응들이 일어난다. 느닷없이 심장이 뛰고, 호흡이 빨라진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손발이 떨리고 마비되는 느낌, 어지럽고 메슥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와함께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 기절하는 것은 아닐까, 미쳐버리거나 자제력을 잃는 것이 아닐까하는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든다. 이러한 공포감은 맹수나 질주해오는 자동차와 같은 실제적인 외부의 위협이 발견되지 않기때문에 더욱 심하다. 더구나 위협 대상이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평온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일단 이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후로도 지속적인 긴장, 불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와같이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자율 신경계 증상들과 함께 극심한 공포감이 밀려오는 현상을 정신과에서는 공황발작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공황발작이 반복되고, 또한 공황발작이 또 다시 오지않을까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되는 질병을 공황장애라고 진단한다. 공황장애라는 병이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초 부터이지만, 하나의 질병으로 정식 인정된 것은 1980년에 이르러서였다. 우리나라에 공황장애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0년대초 이호영 교수(李鎬榮, 현 아주의대 학장 및 정신과 주임교수)에 의해서였다.
공황발작은 우리 뇌속의 「위험 경보 장치」가 병적으로 예민해져서 발생하는 신체적 질병이다. 즉 그 사람의 심리상태나 성격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젖산염을 정맥주사하거나 5% 이산화탄소를 흡입시키면 공황장애 환자에게는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반면, 정상인들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약물치료만으로 대부분의 공황발작이 차단된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위험 경보 장치」가 왜 예민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유전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공황장애 환자의 가족 중에는 공황장애 환자들이 특별히 많다.
공황장애는 대단히 흔하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 이상 공황발작을 경험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30%정도나 되며, 공황 장애로까지 이르는 사람은 그 중 10분의 일인 전체 인구의 약 3% 정도이다. 이렇듯 흔한 공황장애는 또한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대단히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공황발작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따라서 거의 모든 환자들은 그 즉시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며, 응급실로 달려가거나 우황청심원, 진정제, 심장약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증상을 완화시키려 애쓴다. 또 일단 발작이 지나가고 난 후에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검사를 되풀이하여 받아보지만 신체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고 발작은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불치의 병, 진단도 할 수 없는 희귀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는 건강염려증에 빠진다. 또 발작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상황, 혹은 발작이 시작되었을 때 즉시 빠져나오기 힘들거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회피하게 된다. 예를 들면 비행기나 장거리 기차 여행, 고층엘리베이터, 혼잡한 백화점, 러시아워 중의 운전 등이 불가능해지고 이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거의 집밖 출입이 불가능해 진다. 이러한 특정 상황과 장소에 대한 공포와 회피를 임소 공포증이라고 한다. 자연히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다라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고, 두려움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환자들도 흔하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조기에 정확히 진단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거의 대부분 완쾌된다. 약물치료만으로도 공황발작은 거의 대부분 차단시킬 수 있으며, 6개월 이상 약물투여를 하면 과민해진 「위험 경보장치」를 정상화시킬 수 있다. 공황장애가 이미 상당 기간 진행되어 임소공포증이 심해진 환자들에게는 인지-행동치료가 효과적이다.
아주의대의 이호영(李鎬榮), 임기영(林起永)교수팀은 1991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공황장애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세브란스병원에서 시작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1회 2시간씩 총 12주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 기간 중 공황장애에 대한 교육, 환자들의 불안 심리 교정, 현장 노출을 통한 임소공포증의 치료 등 다양한 치료기법들이 전문적인 치료진들에 의해 다각적으로 실시된다.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 실시할 경우 최고의 치료 성공률을 기대할 수 있다.